사도신경 강해 (9) -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

사도신경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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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서론
1. 성자에 대한 고백의 과거, 현재, 미래
우리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의 마지막 내용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까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사실에 대한 고백의 의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다시 한번 더 성자에 대한 고백을 살펴보면 시제의 차이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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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 과거 시제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 현재 시제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 미래 시제
한국어로 보면 시제가 명확하지 않지만, 영어로 보면 명확한 시제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who(Jesus Christ) was conceived by the Holy spiri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 3인칭 단수 현재를 나타내는 고어 시제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 미래 시제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하늘에 오르실 때까지는 과거에 이미 완료된 역사입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예수님의 상태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의 본문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입니다.
그 미래에 일어날 일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일입니다.
예수님이 미래에 심판하러 오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조금 어려울 수 있으나, 우리의 신앙 안에서 종말은 과거입니까, 현재입니까, 미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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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대답해보세요. 종말은 과거?현재?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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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종말은 과거,현재, 미래 모두를 아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종말이 미래에 있을 세상의 끝으로 알고 있죠.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종말은 예수님이 이미 오심으로부터 시작된 진행되는 세상의 종말의 과정이 포함됩니다.
그래서 이미 예수님이 오셨을 때 종말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이 어떤 시점에 딱 세계 멸망으로 끝나는 지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종말은 점점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를 포함하죠.
그리고 그 종말이 완성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의 때, 오늘 본문이 설명하는 그때입니다.
그래서 종말은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일명 “이미와 아직”의 사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일을 사실 알 수 없는 존재들이죠. 그러나 우리는 미래에 일어날 종말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말씀하신만큼 알 수 있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사도신경의 미래의 종말의 완성에 대한 고백을 가지고 완성될 종말은 어떤 양상을 보일지 아는 시간을 가지기 원합니다.
본론
1. “저리로서” (from thence)
“저리로서”라는 말은 영어로 “from thence” 입니다.
“그곳으로부터”라는 말이죠.
그러면 예수님이 그곳으로부터 오는데 그곳은 어디일까요?
예수님이 현재 계신 곳에서 오실 것입니다.
그곳은 하나님 우편이겠죠.
우리는 지난 시간을 통해 하나님 우편이라는 말이 단지 물리적인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우편은 전능하신 왕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한 개념을 생각해내야합니다.
그것은 바로 “낙원”이라는 개념입니다.
낙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옆에 달렸던 강도에게 갈 곳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곳입니다.
강도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은 그가 죽은 후에 나와 함께 낙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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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그러면 어떤 곳입니까?
낙원은 어떤 장소적 개념으로 생각하기보다, 인간이 죽은 후의 상태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인간이 죽은 후 예수님이 이땅에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영과 육이 분리된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영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상태 즉 낙원에서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장소 개념으로 생각하면 낙원을 오해할 수 있어서 제가 계속해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죽은 후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이전까지 영혼이 분리되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상태! 이것이 낙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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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낙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국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천국이 곧 낙원은 아닙니다.
천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은 하늘의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처이면서도 이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이 살아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천국 곧 하나님 나라는 현재 예수님을 믿은 자들이 죽어서 하나님과 영혼만이 함께 하는 상태와 더불어 이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이 살아가는 상태 이 두 측면을 모두 하나님 나라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정말 잘 바로잡으셔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천국의 개념을 죽어서 가는 영혼이 귀신처럼 둥둥 떠다니는 곳으로 알고 있어요.
그것도 어느 정도 맞으나 완벽한 천국은 아닙니다. 그 상태는 오히려 낙원에 가까울 수 있겠죠.
천국은 낙원뿐만 아니라 이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의 삶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그 찬양을 불렀었던 것을 비판하느 것이 아니라, 구원 열차라는 찬양 있죠? 저는 그 내용이 신학적으로 상당히 위험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 열차에서 말하는 천국 개념은 죽은 후 내세처럼 묘사하죠. 천국 열차를 타고 내세의 세계로 영혼만 가는 그런 곳으로요.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 새 땅이 이 땅에 임하는 것이죠.
그리고 여러분 이 천국, 하나님 나라가 언제 하나로 통합되고 완벽히 세워지게 됩니까?
바로 오늘 고백하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때입니다.
그때 하늘의 천국이 이땅에 임하면서 비로소 천국이 완벽하게 세워집니다.
그때 낙원에 거하던 영혼이 분리된 자들은 육체와 함께 부활하게 되고, 산 자들 중 예수를 믿는 심판을 면하게 된 자들은 그들의 육체가 온전하여저서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에서 예수님을 믿는 의인들이 경험하는 부활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심판은 그때 우리가 죽어있을지 살아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 심판은 곧 부활을 경험하게 되기 이전에 있는 일입니다.
2. 예수님의 재림의 모습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은 지금 승천하셔서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십니다.
그리고 그 영광과 권능 그대로 임하십니다.
그리고 그 몸을 입으신 그대로 오십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육신으로 보지는 못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이죠.
물론 지난 주 설교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통치하셔서 함께 하심을 느끼게 되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자로서 예수님의 통치를 경험하며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가시적으로 예수님을 보지는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재림 때, 그리고 그 이후로는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직접 ‘나타내셔서’ 그를 우리에게 직접 ‘보이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재림의 상태가 아니죠.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상태를 단어로 얘기하면, ‘임재’ 혹은 ‘현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씀으로 임재하시고 현존하시는 예수님이죠.
그러나 예수님이 육체로 친히 오시는 것을 우리는 재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는 그 어떤 사람도 모르는 사람이 없이 임하십니다.
마태복음 24:27 NKRV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이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예수님이 오신지 모를 일이 없도록 밝히 알리시며 오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이 어떤 자들에게는 갑작스럽게 있는 것처럼 갑자기 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이 갑자기 오시는 것처럼 재림하실까요?
재림의 명확한 시기를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재림의 시기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알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을 소망하며 기대하는 자들은 언젠가 올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속으로 ‘드디어 오셨다’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림을 소망하고 기대하지 않는 자들은 갑작스럽게는 갑작스러운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이 갑자기 오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이죠.
우리에게 만약에 재림이 임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때야합니까? ‘아 드디어 오셨구나’
‘마라나타’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요한계시록 22:20 NKRV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이 말이 아람어로 “마라나타”입니다.
우리는 재림을 소망하며 준비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를 기다리며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라고 외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들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 ‘드디어 오셨군요’라고 외칠 수 있는 종말을 살아가는 자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3. 재림의 전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 완전 무감각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분명 재림이 가까워오면서 일어나는 징조들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1) 여러가지 재난
마태복음 24:6–8 NKRV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2) 그리스도인들의 환난과 핍박
마태복음 24:9–10 NKRV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데살로니가후서 2:3 NKRV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3)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
마태복음 24:11 NKRV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마태복음 24:24 NKRV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4)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해 온 세상에 전파됨
마태복음 24:14 NKRV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러한 현상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증해져 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들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징조들을 근거로 들어서 계속해서 불안을 조장하는 일입니다.
제가 최근 인스타를 보면 몇몇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징조들이 지금 있기 때문에 재림이 곧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여러분 확실히 하셔야할 것은 이러한 현상들은 예수님이 초림하신 이후로 항상 있어왔던 일입니다.
이런 현상은 점증해져갈 것이지만 그 경험을 느끼는 우리는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우리가 겪는 경험이 강렬한 것을 재림이 다가온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가지를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첫째로, 이러한 징조들로 인하여 성도들이 불안과 공포로 휩쌓이는 것을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로, 이러한 징조들로 인하여 지금 시대에 예수님이 반드시 재림할 것이라는 거짓된 확신을 주길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징조들 가운데 우리가 가져야 할 유일한 마음은 “재림을 마음으로 준비하는 태도”입니다.
4.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이제 우리는 가장 껄끄러울 수 있는 주제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것은 “심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심판을 위함입니다. 재림은 곧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러나 어떤 자들에게는 심판이 껄끄러울 수 있습니다.
내가 심판 받을까하는 불안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심판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땅에 온전한 정의가 임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베스트입니다.
온전한 정의가 임하면 선과 악은 온전하게 구분될 것이고, 그제서야 이 땅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었던 죄악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정의만이 죄악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온전한 정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 온전한 정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완전한 의로움을 믿는 자들이 바로 우리죠.
우리는 완전한 의로움을 예수님이 완성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완전한 정의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임했을 때, 우리는 그 의로움으로 심판을 면하고, 그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심판을 면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온전한 삶은 완전한 정의가 이땅에 임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지난 주 내용에서 예수님의 통치가 이땅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불안해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아직 남아있는 죄악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의 통치와 죄의 권세가 공존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 땅에 온전한 정의가 임할 때 그 죄의 권세는 이제 완벽히 소멸됩니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의로 인하여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정의가 이 세상을 온전케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 우리는 온전한 정의가 임하길 간절히 바래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성도들의 마음, 태도입니다.
적용)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면서도 죄의 잔존으로 고통받는 우리가 바라볼 완전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듯이 살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듯 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요?
재림이 두려움과 공포가 아니라 우리의 위로와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이 여러분의 삶의 위로와 기쁨이 되고 계십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의 위로를 지금 당장 얻어지는 것들로 충족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은 오래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하잖아요.
재림은 기약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오래 기다리는 마음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재림은 확실히 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얻어지는 것들이 위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로를 줍니다.
영원한 정의가 우리의 삶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하고 온전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으로 위로를 구하려 하십니까?
여러분이 재림을 통한 위로를 사모하지 않고, 당장의 것들로 위로를 구하는 삶은 처량한 삶일 뿐입니다.
유효기간이 아주 짧은 위로들, 즉 사람으로부터 받는 위로, 재미로부터 받는 위로, 성취감으로부터 받는 위로
이러한 위로들이 때로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영원한 위로는 아닙니다.
우리의 영원한 위로는 당장 오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미래에 올 완벽한 정의의 재림입니다.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들, 옛날에는 부모님들이 불량식품을 많이 먹지 말라고 하셨었습니다.
그런 가공식품들이 사실 맛있죠. 조리하는데 시간도 아주 짧게 걸리고, 맛도 자극적이니까요.
그러나 그것들만으로 우리의 영양분을 공급받으면 그 몸은 허약해지고, 병들이 생긱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맛이 덜 자극적이고, 조리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천연식품들을 먹으면 어떻습니까?
맛이 덜 자극적이지만 우리의 육체를 건강하게 하고 수명을 연장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다림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재림으로 임할 완전한 정의는 우리의 삶에 영생을 주며, 영원한 위로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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